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고 ‘합리화시키는 동물’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생각하기를 ‘지독하게’ 싫어한다. 인간의 뇌는 1.4kg에 불과하고 전체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지만, 전체 에너지의 20%나 소비한다. 따라서 인간은 가급적 뇌를 적게 사용하려는 성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성향을 ‘인지적 구두쇠’로 표현한다. 이러한 인지적 구두쇠인 인간들이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행동경제학이다. 본 칼럼은 행동경제학에서 입증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의 마케팅과 서비스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에 지인의 생일을 알려주는 알림이 뜨는 까닭에 선물이나 축하 메시지를 받고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나 역시 페이스북이나 카톡 등을 통해 꽃이나 큼지막한 케이크가 그려진 축하 메시지를 받곤 한다. 이모티콘이나 축하 메시지만 받을 때는 “커피나 생일 케이크 같은 모바일 상품권이라도 함께 보내면서 축하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지인들에겐 답신하곤 한다. 농담 삼아 한 말이지만, 사실 진심도 들어있다. 말로만 축하하기보다는 꽃 한 송이라도 함께 줘야 진짜 축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돈이 들어가야 진짜 축하(祝賀)다
원래 축하(祝賀)라는 한자어는 빌 축(祝), 축하할 하(賀)로 구성되어 있다. 축(祝)은 신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하(賀)는 돈을 뜻하는 조개 패(貝)에 더할 가(加)로 구성되어 있다. 상형 문자인 한자를 뜯어보더라도 ‘돈을 더한다’는 말이 들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돈이 들어가지 않는 ‘축하’는 축(祝)은 되지만 하(賀)는 되지 못한다.
인간은 여전히 물질적인 존재이다. 한마디로 물질적 징표인 선물이 있어야 진정성 있는 축하가 된다는 말이다. 특히 요즘같은 코로나 시절에는 모바일 쿠폰이 제격이다. 특히 젊은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통방식은 술이나 음식을 먹는 회식 대신, 그 비용으로 기프티콘 등 모바일 상품권을 선물받는 언택트 회식이라고 한다.
백화점에서 직접 산 상품이든, 모바일 쿠폰이든, 선물을 잘하는 사람은 주변의 평판이 좋고 인기가 높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선물을 주고받을까? 선물에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와 같은 메시지가 함께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한층 돈독히 해주는 촉매제가 되어준다.
이에 관해서는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의 저자인 덴마크의 과학 저술가 토르 뇌레트라네르스(Tor Nørretranders)가 제기한 흥미로운 이론이 있다. 그는 똑같은 물건이라도 그것이 선물일 때와 상품일 때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은 판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두 사람이 거래를 하는 순간에 서로 볼일을 다 본 셈이므로 그것으로 바로 끝이다. 그러나 고객들이나 지인들과, 또는 연인들 사이에 선물이 오가면 그들 사이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선물은 ‘관계를 맺고 싶다’라는 값비싼 신호를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연인들이 사랑에 빠진 초기에 그토록 선물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선물은 두 사람 사이에 교환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단순한 교환과 다른 점은 시간 간격을 두고 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한마디로 ‘비연속적 베풂의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받은 선물에 대해 그 자리에서나 받는 순간에 곧바로 답례하는 것은 ‘받은 선물을 거절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결례’라고 여기는 문화가 있다.
답례를 하기는 해야 하지만 그 자리에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비연속적으로 교환하게 되는데, 그 시간 차이가 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선물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답례하면 ‘당신과는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라는 뜻이 되고 만다. 교환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생일에 선물했다면 나는 그 답례를 내 생일 때 받게 된다. 그때까지 둘 사이는 관계라는 끈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은 관계를 형성하는 훌륭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소유’보다 ‘경험’을 선물한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로 선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선물은 그 어떤 대화법보다 상대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따라서 고객관리 요령이나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기술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고민과 지혜가 필요하다. 큰돈을 쓴다고 상대가 그만큼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우리는 한정된 돈을 효율적으로 지출할 수밖에 없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어떤 선물을 해야 같은 비용으로 상대방을 더 기쁘게 할 수 있을까? 바로 ‘소유’보다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다.
만약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오사장이 올해 매출 목표를 달성한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1인당 30만 원 정도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하자. 그래서 현금 30만 원과 30만 원 상당의 호텔 식사권 중 하나를 주기로 했다.
만약 직원들을 대상으로 “어느 것을 받고 싶으냐?”라는 선호도 조사를 한다면 직원들 대부분은 현금 30만 원을 선택할 것이다. 사람들은 현금의 유용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 30만원을 현금으로 받으면 원하는 것을 뭐든 살 수 있으나 호텔 식사권을 받게 된다면 저녁 외식 정도로 제약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따져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위와 같은 내용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다른 선택의 기회 없이 30만 원짜리 최고급 호텔 식사권을 받은 직원이 그냥 현금 30만 원을 받은 직원보다 기쁨의 정도가 훨씬 높았다.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직원들은 평생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사장님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반면에 현금 30만 원을 받은 직원들은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기억조차 묘연했다. 이처럼 선물에는 비효율성을 상쇄하고 남을 정서적 가치가 들어 있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제약 조건 때문에 평소 자기가 좋아하는 것, 먹고 싶은 것을 다 사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야 할 때가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직원들은 현금 30만 원과 호텔 식사권 중 하나를 선택할 때 호텔에 가서 호화로운 경험을 하고 싶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현금 30만 원을 선택한다.
여기에서 선물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 말은 곧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 그 사람이 너무 사고 싶지만 그것을 꼭 구입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거나,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살 수 없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의미다. ‘필요한 것보다 사고 싶은 것을 선물하라’라는 것이 선물의 경제학이다. 경제학적으로 효용성이 크다고 해서 심리학적으로 반드시 만족도가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물의 즐거움을 편집하라
한 번은 동네 화장품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뒤돌아 나오려는데 판매원이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참, 장 교수님! 출장을 많이 다니신다면서요?”하며 샘플 몇 개를 쇼핑백에 담아 주었다.
별것 아닌 샘플이지만 화장품을 살 때 한꺼번에 봉투에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특별 선물처럼 별도로 챙겨주면 각별히 신경 써준다는 느낌을 받게 되므로 기쁨이 더 커진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고객의 기억을 제대로 관리할 줄 아는 노련한 판매원이 분명하다.
선물이나 서비스를 다른 사람이 오래 기억하도록 하려면 두 가지 측면에 집중해야 한다. 한 가지는 유쾌한 기억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쾌한 기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라는 말은 심리학적으로도 사실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쾌락적 편집(Hedonic Editing)’이라고 하는데, 고객의 기억이 즐겁도록 의도적으로 편집한다는 의미다.
쾌락적 편집의 첫 번째 원칙은 상대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는 ‘합하지 말고 나누라’이다. 나누면 기쁨과 만족도가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가령 제품을 15% 할인할 경우 그냥 15% 할인이라고 하지 말고 회원 고객 5% 할인, 주말 고객 5% 할인, 휴가철 특별 할인 5%로 나누어서 말해야 고객이 더 만족하고 오래 기억한다. 앞서 화장품 가게 판매원도 샘플을 별도로 줌으로써 즐거움을 두 번에 걸쳐 나누는 전략에 해당된다.
오래 전 국내 모 자동차 세일즈맨에게서 자동차를 구입했다. 한 번은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서 출장수리를 부탁했더니 수리는 물론 선물로 블랙박스를 장착해 주어서 나를 감동시켰다. 감사 인사를 전하자 “원래 따로 선물할 계획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분 역시 쾌락적 편집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는 훌륭한 세일즈맨이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큰맘 먹고 아내에게 줄 목걸이와 반지를 샀다. 그런데 목걸이와 반지를 한꺼번에 선물하는 게 좋을까, 하나를 먼저 주고 다른 하나는 생일에 주는 게 좋을까? 정답은 결혼기념일에 목걸이를 주고, 아내 생일에 반지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선물의 심리학’ 칼럼에 꼭 덧붙여야 하는 사례가 이번 생일에 벌어졌다. 내가 평소 패스트푸드점의 저렴한 커피를 자주 마시고 있는 점에 착안했는지 한 지인이 생일 선물로 프랜차이즈 커피의 ‘달콤충전세트(9,500원)’ 쿠폰을 보내온 것이다. 물론 고마웠지만, 생일 쿠폰 용도로는 스타벅스의 ‘카라멜 마키아또(5,900원)’가 더 적절했을 것이다. 선물에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용도보다 브랜드 자체가 품격과 정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이와 비슷한 아픈 경험이 하나 있다. 해외연수 출장을 다녀오면서 두 상사에게 줄 선물을 샀다. 그중 하나는 10만 원짜리 유명 브랜드 목도리였고, 다른 하나는 15만 원짜리 골프 티셔츠였다.
그런데 목도리를 받은 상사는 최고급 목도리를 사 왔다고 아주 고마워했다. 반면 티셔츠를 받은 상사는 목도리를 받은 상사만큼 내 선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인색하게 선물을 골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15만 원짜리 티셔츠는 골프 티셔츠치고는 비싼 것이 아니었고, 더구나 무명 브랜드였다.
내 입장에서는 더 비싼 선물이었는데도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그 이유는 선물을 주고 받는 사람의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 있다.
선물을 하는 사람은 백화점 등에서 선물을 고를 때 여러 가지 물건을 놓고 가격을 기준으로 상대평가를 한다. 여러 가지 품목 중 하나를 고르는 아주 전형적인 상대평가 과정이다.
그러나 선물을 받는 사람은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사실을 나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은 당신이 선물한 그 한 가지만 보고 이 물건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절대평가를 하게 된다. 그 절대평가 기준은 그 상품의 브랜드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따져 보면 선물을 사는 사람은 구매 활동을 하는 셈이고, 선물을 받는 사람은 소비활동을 하는 셈이다. 선물에서는 이처럼 구매와 소비의 주체가 뚜렷하게 구분된다.
선물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물을 하는 목적이다. 선물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절대평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선물을 선택해야 한다.
중저가 브랜드로 인식된 (내가 더 비싸게 산) 화장품 세트보다는(내가 싸게 샀더라도) 최고 브랜드의 립스틱에 상대는 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더 고급스러운 브랜드가 더 큰 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선물의 심리학인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에 상대방이나 고객을 더 기쁘게 만드는 선물의 기술을 적절히 활용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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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빈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jjb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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